해부학 정의
해부학이란 생명체 내부의 구조와 형태 등을 육안 혹은 관측 장비를 사용하여 관찰하고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인간의 삶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의학에 기초가 되는 뿌리역할을 하는 학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해부학이라는 학문에는 인체, 동물, 식물해부학이 모두 포함됩니다.
해부학 종류
해부학은 관점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육안해부학(거시해부학)과 현미해부학(미시해부학)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중 거시해부학은 단어 그대로 특별한 관측 장비 없이 육안으로 관측 가능한 범위의 구조물들에 대한 학문인데 물리적인 절개 등의 방법을 사용합니다.
이와는 다른 개념인 미시해부학은 육안으로는 관찰하지 못하는 범위, 즉 특정한 장비(현미경 등)를 사용하여 관찰할 수 있는 범위의 극히 작은 해부학적 구조들에 대한 연구 및 관찰을 포함한 학문입니다.
해부학의 역사
해부학의 기원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고 알려집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의학서적으로 불리는 중국 한나라 시대에 성립된 황제내경(한의학이론의 기초)에서 해부를 해야만 알 수 있는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인데 이러한 역사적 기록물을 참고했을 때 해부학이 그 시대에 이미 행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인체에대한 해부는 기원전 4세기 경 이집트 알렉살드리아에서 헤로필루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라는 두 사람에 연구에 의해 전해졌는데 그리스 의학자로서 이들은 해부를 토대로 인체를 연구했었다고 추정됩니다.
하지만 그당시 시대에는 인체 해부는 종교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대부분 시행되지 않았는데 삶을 다한 시체가 부정하다는 관념이 있었던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체를 다루는 해부학은 종교적으로 악마의 학문 또는 악마의 지식이라는 현시대의 사상으로는 믿기 힘든 사상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도 학문을 발전시키는 인물은 등장하는 법.
헤로필루스라는 사람은 사형수를 실험 대상으로 산채로 묶어 죽을 때까지 해부 실험을 진행하여 당대 해부학의 정점에 이르렀고 현대에도 통용되는 해부학적인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해부학적 실험 과정이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끔찍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그의 모든 지식과 실험결과가 주목을 받진 못하게 되었습니다.
해부학은 그 당시에 사형수의 형벌방식인 사형의 한 방법으로나마 쓰이던 지식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지식을 후대에 전달한다는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후 기독교 문화권에 접어들면서 사후 시신을 매장하는 무덤을 신성한 장소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치유력과 종교적 원천으로 생각하면서 시체가 부정하다는 인식이 차차 없어졌습니다. 중세시대에 교회는 교육과 연구의 목적은 아니었지만 인간의 해부를 용인했고 권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종교적인 목적을 예로 성인(聖人)의 육신을 보존하고 기다린다는 명목으로 성인이나 성녀의 내부 기관을 조사해 종교적인 의미를 찾았습니다.
하지만 이 당시의 해부를 연구를 목적으로 시행하는 오늘날의 의학(해부학)의 발달로 이어졌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현대의 의학과 뜻을 같이하는 교육과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인체해부는 1300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되었습니다. 15세기말이 돼서야 해부 수업은 다시 북유럽의 의과대학까지 퍼져나아 갔고 16세기엔 모든 의과대학에서 광범위하게 시행되었습니다. 이때 교육과 연구를 목적으로 사용되었던 시체는 사형수의 시체가 많았는데, 처리 과정의 미흡으로 인해 시체가 온전히 보존되는 일이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온전하지 않은 시체였지만 이때의 해부학 수업은 이론적인 부분만 학습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해부하는 식으로 전개가 되어 완전한 해부학으로 보길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해부학을 온전한 학문으로 정립한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이었는데, 당시의 대표되는 인물로 베살리우스가 등장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중심으로 그 시대의 미술가들은 인간의 신체를 완전히 알아야 명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었고 이러한 생각들이 해부학 발전의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후 상업이 크게 발전하고 십자군 전쟁이 발발하며 중세 유럽을 지탱하던 종교, 도덕적 관습이 차차 힘을 잃어가고 잊히게 되자 자연스럽게 해부학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이러한 해부는 범죄자들이 죽고 난 후에 그 시신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이때에는 의사들 뿐 아니라 예술가들도 인체 해부를 시행했었는데 해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사회에선 인체에 대한 해부가 한 가지의 행사처럼 되어버려서 공개적인 장소에서까지도 해부가 시행되기도 했습니다. 당대의 이러한 해부가 예술작품으로써 가치가 있었다는 건 당대의 이러한 문화를 담은 그림이 있다는 것으로 유추해 볼 수가 있습니다.
이후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과학이 발전되면서 의학의 발전도 당연히 크게 일어났는데 그에 따라 해부에 대한 열정은 더욱 커져만 갔고 이로 인해 이름난 명사나 지식인, 예술가들은 인체해부를 한 번쯤 해봐야 한다는 기조가 생겨났고 해부에 대한 수요가 커져 감에 따라 점차 시신이 도굴되거나 시신을 밀수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이루어졌습니다.
19세기 초에는 유럽이 해부학의 중심지를 차지하게 되는데 인체 해부를 위한 시신(카데바)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던 녹스라는 해부학자가 연쇄살인범들과 카데바를 암거래하여 해부하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불미스러운 사건에도 불구하고 해부학의 발전은 계속 이어져 나갔습니다.
이러한 해부에 대한 욕구와 열정들 덕분에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인체해부학은 완성에 가까워졌습니다.
현대의 해부학은 이때 정립된 해부학을 기반으로 두고 있으며 현재 시행하는 해부는 교육목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특별한 케이스를 제외한 인체에 대해 물리적 구조에 대한 연구가 완성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1858년 헨리 그레이가 세계 최초의 해부학 서적 그레이 해부학을 출판하게 되는데 하나하나 꼼꼼히 스케치한 그림과 함께 상세하게 설명을 남긴 이 서적이 오늘날까지도 해부학의 고전으로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현대 해부학은 컴퓨터 그래픽을 기반으로 입체적 해부학 모델이 등장하게 되며 인간의 삶의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의학 교육에 보조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의 기술 발달과 결함 하여 외과적인 수술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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